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열에 여덟은 이탈리아를 꼽습니다. 음식도, 볼거리도, 분위기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는 이유인데요. 저도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특히 밀라노는 패션 도시라는 이미지 때문에 쇼핑 여행지로만 알고 갔다가, 예술과 역사의 밀도에 완전히 압도된 곳입니다.
1. 고딕 양식의 정점, 두오모와 갈레리아
밀라노를 처음 방문하는 분들에게 감히 묻고 싶습니다. 성당이 완공되는 데 500년이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밀라노 대성당, 즉 두오모(Duomo)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1386년에 착공해 20여 명의 건축가가 손을 거쳐 5세기 만에 완성된 이 건물은, 건설 기간만으로도 세계 기록에 가까운 성당입니다.
두오모는 고딕 양식(Gothic Architecture)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고딕 양식이란 중세 유럽에서 발달한 건축 양식으로, 날카롭게 솟은 첨탑과 세밀한 조각 장식,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특징입니다. 두오모에는 이런 첨탑이 무려 135개나 있고, 외벽에는 2,245개의 조각상이 빼곡히 들어서 있습니다. 처음 마주하는 순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저는 새벽 6시에 두오모 광장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성당 조명만 밝혀진 풍경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그냥 서 있었습니다. 낮의 두오모도 물론 멋있지만, 이른 아침의 고요한 두오모는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옥상에 올라가면 첨탑들 사이를 직접 걷는 경험을 할 수 있고, 날씨가 맑은 날에는 멀리 알프스 산맥까지 시야에 들어옵니다. 계단과 유료 엘리베이터 중 선택할 수 있는데, 저는 올라갈 때는 계단,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추천합니다.
두오모 광장에서 라 스칼라 극장(La Scala)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도 꼭 걸어봐야 합니다. 1877년에 완성된 이 아케이드는 유리와 철골로 만들어진 47m 높이의 돔이 특징인데, 모자이크 바닥과 돔 천장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 정말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습니다. 바닥에는 이탈리아 각 지역을 상징하는 4개의 모자이크화가 있고, 소의 특정 부위에 발꿈치를 대고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항상 줄이 서 있습니다. 보수 공사를 연간 세 번이나 한다니, 소원 비는 사람들의 열정이 어마어마하죠.
밀라노에서 놓치면 아까운 명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두오모 대성당 옥상 전망대 (이른 아침 방문 강력 추천)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 (모자이크 바닥 소원 빌기)
- 라 스칼라 극장 (오페라 시즌 12월 7일~7월 초)
- 나빌리(Navigli) 운하 지구 (운하 옆 식당, 분위기 좋고 가격도 합리적)
- 스포르체스코 성 (미켈란젤로 마지막 작품 소장)
2.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도시, 최후의 만찬과 미술관
밀라노가 단순한 패션 도시가 아니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L'Ultima Cena)이 이 도시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 수도원 식당 벽에 그려진 이 작품은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출처: UNESCO).
최후의 만찬은 프레스코화(Fresco)가 아닙니다. 여기서 프레스코화란 젖은 회벽에 수성 물감으로 그리는 기법으로, 벽과 물감이 함께 굳어 내구성이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다빈치는 이 기법 대신 젖은 회벽에 기름성 물감을 덧입히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완성 직후부터 그림이 빠르게 손상되기 시작했습니다. 1550년경에 이미 절반이 훼손될 정도였고, 이후 나폴레옹 군대가 이 방을 마구간으로 쓰는가 하면, 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건물이 무너지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수도원장이 모래 가마니로 벽화를 보호해 그림 자체는 살아남았고, 22년에 걸친 복원 작업 끝에 1999년에 재개방되었습니다.
그림의 구도도 직접 보면 놀랍습니다. 천장과 벽면의 소실선이 모두 중앙의 예수로 수렴하며, 그림 속 천장이 수도원 식당의 천장과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원근법(Perspective)을 이렇게 치밀하게 활용한 그림이 15세기 작품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관람은 사전 예약이 필수이고 입장 시간도 제한되어 있으니, 여행 전에 반드시 확인하고 가셔야 합니다.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도 꼭 가야 할 곳입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국립 박물관 중 하나로, 16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미술 사조를 말합니다. 2층 38개 전시실에 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의 죽은 그리스도(Cristo morto)가 특히 인상 깊습니다.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올려다보는 특이한 시점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단축법(Foreshortening)이라는 기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단축법이란 원근감을 강조하기 위해 인물이나 사물을 실제 비율보다 압축하여 표현하는 회화 기법으로, 만테냐는 이를 통해 죽음의 무게감을 극적으로 전달합니다.
한 가지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벨리니의 피에타에 등장하는 예수 오른쪽 인물을 요셉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인물은 요셉이 아니라 사도 요한입니다. 피에타(Pietà)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종교 미술 형식인데, 이 장면의 표준 등장인물은 성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사도 요한입니다. 정확하게 알고 감상하면 그림이 훨씬 더 풍부하게 읽힙니다.
3. 언제 가야 할까, 방문 시기와 현실적인 팁
밀라노에 가는 시기를 고민하고 계신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언제 가느냐에 따라 경험이 꽤 달라집니다.
패션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밀라노 패션위크(Milan Fashion Week)를 노려볼 수 있습니다. 패션위크는 세계 4대 패션위크 중 하나로, 매년 2월과 9월 두 차례 열립니다. 그런데 저는 4월 초에 열리는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 즉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를 더 추천합니다. 살로네 델 모빌레는 세계 최고 권위의 리빙 디자인 쇼로, 밀라노 전역의 갤러리와 공간에서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들이 동시에 실력을 펼치는 행사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기간에는 밀라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으로 변합니다. 단, 디자인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에게는 이 시기가 비추입니다. 숙박비가 오르고 사람도 몰리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큽니다.
밀라노에서 당일치기나 반나절 코스로 꼬모 호수(Lago di Como)를 방문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꼬모 시내만 보고 실망했다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제 경험상 꼬모에서 진짜 좋은 곳은 벨라죠(Bellagio)나 바레나(Varenna)입니다. 호수 유람선을 타고 스위스 국경 너머까지 가는 코스가 있는데, 북쪽 알프스와 호수가 함께 펼쳐지는 풍경은 말로 설명이 안 됩니다. 제 인생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푸니쿨라(Funicolare)는 솔직히 그냥 그 정도입니다. 유람선에 더 시간을 투자하시길 권합니다.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AC 밀란이나 인터밀란 홈경기 일정도 미리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산 시로(San Siro) 구장에서 직접 경기를 보는 것도 밀라노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 중 하나입니다.
밀라노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은 도시입니다. 두오모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고, 최후의 만찬 앞에서 15분이 짧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처음 가시는 분이라면 최소 2박 3일, 여유가 된다면 꼬모 호수 당일치기까지 더해 3박 4일을 잡으시길 추천합니다. 준비를 많이 할수록 보이는 것도 많아지는 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