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연평균 1,020만 명이 찾는 박물관, 루브르입니다. 저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아직까지 못 본 관이 있을 만큼, 이곳은 그냥 넓은 게 아니라 압도적으로 넓습니다. 루브르를 처음 가시는 분이라면 특히 이 한 가지를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살아 돌아올 수 있습니다.
루브르, 왜 이렇게 거대해졌을까 — 역사와 구조의 비밀
루브르가 처음부터 박물관이었다면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가지지는 않았겠죠. 원래 이곳은 1190년 필리프 2세(Philippe II Auguste)가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운 요새였습니다. 10개의 방어탑과 두 개의 도개교(drawbridge)를 갖춘 성채로, 도개교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위아래로 여닫을 수 있는 다리를 말합니다. 파리가 산 하나 없는 평지 지형이다 보니 외세의 침략이 잦았고, 왕들은 요새를 방어의 핵심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샤를 5세 때부터 왕의 거주지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루브르는 왕궁으로 탈바꿈합니다. 16세기 프랑수아 1세(François I)가 이탈리아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중세의 모습을 허물고 지금의 정사각형 안뜰 구조의 시초를 만들었는데, 이때 그가 직접 프랑스로 모셔온 인물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다빈치가 프랑스 땅에서 생을 마감한 것도 프랑수아 1세와의 인연 덕분이었습니다.
루브르가 지금처럼 소장품으로 가득 찬 계기는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두 인물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루이 14세는 1682년 베르사유로 거처를 옮긴 뒤 루브르를 자신의 컬렉션 보관소로 활용했고, 이때 만든 것이 바로 최초의 전시실인 갤러리 아폴론(Galerie d'Apollon)입니다. 이후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며 왕실 소장품은 국민의 자산으로 전환되고, 1793년 공화국 중앙미술관으로 정식 개관합니다. 나폴레옹은 여기에 전쟁을 통해 획득한 유럽 각지의 걸작들을 대거 추가했습니다. 나폴레옹이 패한 뒤 많은 작품을 반환했음에도 대부분은 지금까지 루브르에 남아 있습니다.
루브르의 소장품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기 어려우신가요? 현재 소장 작품은 약 50만 점이고, 실제로 전시 중인 작품만 3만 6,000점에 달합니다. 1분에 한 작품씩 24시간 쉬지 않고 봐도 3주 이상이 걸리는 양입니다. 루브르에 소장된 가장 오래된 유물 중 하나인 아인 가잘(Ain Ghazal) 석고상은 기원전 7,000년경 요르단에서 발굴된 신석기 유물로, 인간인지 신인지조차 특정하기 어려운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하나의 나이만 해도 9,000년이 넘습니다.
유리 피라미드와 관람 노하우 — 알고 가면 덜 지칩니다
지금 루브르의 정문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게 바로 그 유리 피라미드죠. 그런데 이 피라미드가 생긴 게 불과 40여 년 전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80년대 미테랑 대통령 시절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그랑 루브르란 낙후된 전시 시설과 정부 부처가 혼재하던 루브르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는 대형 국가 문화 사업으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전시 공간이 기존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납니다. 건축을 맡은 인물은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I. M. Pei)였습니다. 당시 프랑스 국민들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왜 루브르 앞에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세우냐"는 것이었죠. 이에 페이는 피라미드가 영원함을 상징하며, 프랑스식 기하학 정원을 설계한 르 노트르(Le Nôtre)의 기하학적 미학을 계승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투명한 유리 구조로 채광(natural lighting)을 확보해 지하 공간까지 자연광을 끌어들이도록 설계되었는데, 채광이란 인공조명 없이 외부 빛을 내부로 유입시키는 건축 기법을 말합니다. 이 설명을 들은 프랑스인들이 그제야 수긍했다고 합니다.
저도 야간 개장으로 4~5시간을 돌아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날 약을 먹고 잤는데도 다음 날 회복이 안 됐습니다. 루브르는 몸으로 때우는 곳이 아닙니다. 이런 현상에는 실제로 박물관 피로(museum fatigue)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박물관 피로란 전시 공간에서 학습 본능이 과도하게 자극되어 일반 보행보다 훨씬 빠르게 체력과 집중력이 소진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루브르처럼 규모가 크고 정보량이 많은 곳일수록 이 피로가 더 빠르게 찾아옵니다.
제 경험상 이게 가장 현실적인 관람 전략입니다.
- 방문 전 미리 "꼭 볼 작품 3~5점"을 정해두고 보물찾기하듯 찾아가기
- 모나리자가 있는 드농관(Denon Wing)은 가장 혼잡하므로 오픈 직후 또는 야간 개장 시간에 방문
- 리슐리외관(Richelieu Wing)의 마를리 정원은 유리 천장으로 채광이 들어와 사진도 잘 나오고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공간
- 전시실 입장 시 반드시 천장도 확인할 것 — 화려한 천장화와 조각들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음
이 중 리슐리외관은 제가 특히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루벤스, 렘브란트 등의 작품들이 모여 있고, 마를리 정원은 루이 14세의 별장이었던 마를리 성(Château de Marly)에 있던 조각들을 그대로 옮겨온 곳입니다. 실내인데도 거대한 조각상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어 잠깐이나마 야외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줍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공식 관람 정보는 출처: 루브르 박물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아시아 유물이 궁금하신 분들은 루브르에서 한국 작품을 찾아 헤매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메 동양 박물관(Musée Guimet)으로 소장품들이 이전되었고, 에펠탑 인근에 위치한 이곳 한국관에서 김홍도의 작품과 불교 탱화 등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기메 박물관의 소장 현황은 출처: 기메 동양 박물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루브르는 한 번 방문으로 정복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저처럼 여러 번 가도 못 본 곳이 남을 만큼 방대합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오늘 볼 것만 제대로 보겠다는 마음으로 가시는 게 결국 가장 남는 관람이 됩니다. 처음 가신다면 세 작품만 제대로 보고 오겠다는 목표로 충분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루브르는 충분히 압도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