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요? 거기 뭐 볼 거 있어요?" 주변에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속으로 살짝 웃습니다. 예전의 교육 도시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여행지로는 잘 안 떠오르는 게 사실이죠. 제가 직접 살아보고 아이들과 함께 다녔던 이 도시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알려드리겠습니다.
1. 교육 도시라는 고정관념, 그 뒤에 있는 청주의 맥락
청주가 '재미없는 도시'라는 인식은 어디서 왔을까요. 오래된 교육 인프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해 온 탓에, 관광 자원보다는 생활 기반이 먼저 갖춰진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적 특성이 오히려 요즘은 장점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도시 재생(Urban Regener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도시 재생이란, 낡거나 기능을 잃은 도심 공간을 허물지 않고 원래 구조를 살려 새로운 용도로 바꾸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청주의 국립현대미술관이 딱 이 사례입니다. 이 미술관은 국내 최초의 수장형(收藏型) 미술관으로, 수장형이란 소장 작품을 전면 공개하지 않고 일정 비율을 보관·연구하는 운영 방식을 말합니다. 특히 건물 자체가 담뱃잎을 보관하던 옛 연초제조창(담배 공장)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 인상적입니다. 제가 처음 들어섰을 때, 천장 높이와 기둥 배치가 일반 미술관과 전혀 달라서 처음엔 공장인지 미술관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청주가 교육 도시라는 인식이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전부라고 보는 시각은 이제 좀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 근래 특색 있는 독립 카페들이 도심 곳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MZ세대 방문객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2. 걷고 먹고 보는, 청주 핵심 명소 실전 분석
청주 여행을 처음 계획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게 동선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암골 벽화거리에서 시작하는 루트를 선호합니다. 수암골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그 지형 자체가 독특합니다. 2007년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벽화 마을이 조성된 이후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입소문이 났죠.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규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절반만 본 거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수암골 언덕 위로 이어지는 카페 거리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청주 시내를 내려다보는 경험이 꽤 인상적일 것입니다. 어느 카페에 들어가도 뷰가 나온다는 게 이 거리의 지형적 이점입니다.
청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암골 벽화거리: 피란민 정착촌 역사 + 드라마 촬영지 + 언덕 카페 뷰
- 상당산성: 조선 시대 성곽 위를 걸으며 시내 전망을 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
-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구 연초제조창을 활용한 수장형 미술관
- 육거리시장: 청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통시장으로 지역 먹거리 탐색에 최적
- 청남대: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 이용되었던 별장
상당산성은 조선 시대에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입니다. 포곡식 산성이란, 산 능선만을 따라 쌓은 것이 아니라 골짜기를 감싸 안듯 성벽을 두른 형태로, 내부에 물과 농경지를 확보할 수 있어 장기 방어에 유리한 구조를 말합니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청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져 여러 번 와도 질리지 않는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아이들과 함께 다닌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모두를 돌아봐도 어느 계절을 하나 꼽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청주의 먹거리 이야기를 빼면 섭섭합니다. 삼겹살을 대중화시킨 발원지로 청주를 꼽는 시각이 있는데, 저는 이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전국적으로 삼겹살 전문점이 퍼지기 전부터 청주에는 두툼한 생삼겹살을 연탄불에 구워 먹는 문화가 뿌리내려 있었습니다. 오래된 골목 식당들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는 게 그 증거라고 봅니다.
3. 청주를 더 깊이 보고 싶은 분들에게 드리는 제안
청주를 단순 경유지나 충북 관문 정도로만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시각이 조금 아쉽습니다. 육거리시장만 해도 청주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생활 밀착형 먹거리와 지역 특산품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관광지화된 시장이 아니라 실제 지역민들이 장을 보는 곳이라 훨씬 생동감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그 도시의 결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문화 관광 자원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로 헤리티지 가치(Heritage Valu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헤리티지 가치란, 어떤 장소나 건물이 역사적·문화적·사회적으로 다음 세대에 물려줄 만한 의미를 갖는가를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청주는 수암골, 상당산성, 연초제조창 등 이 기준에서 꽤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자산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충청북도 문화재 정보에 따르면 충북 지역의 문화재 지정 건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으며, 청주 도심 내 지정 문화재만도 상당수에 이릅니다(출처: 충청북도청).
또한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국내 비대면 안심 관광지 목록에도 청주 인근 자연 관광지 여러 곳이 포함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처음 청주를 가는 분이라면 수암골과 상당산성, 국립현대미술관 이 세 곳을 하루 동선으로 묶어보시길 권합니다.
시간 여유가 되신다면 대통령의 별장이었던 청남대를 드라이브 삼아 다녀오신 후 저녁은 육거리시장 주변 삼겹살 골목으로 마무리하면, 청주라는 도시가 가진 두께가 조금은 느껴지실 겁니다.